2018년 12월 20일

여유가 좀 있다면 옛날처럼 <폭발적인 일기>라도 그려 볼까 싶은데

회사에서 계속 마감 재촉을 받는 일상의 반복이라

내년이건 그 뒤건 좀 더 시간이 생길 때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센티닷넷엔 하루에 한 백 분 정도 방문하시는 것 같아요.

가끔씩 뭐, 사오백 명이 찍힐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오는 거라

저나 제 작품이 부른 방문자는 아닌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백 분만 해도 꽤 많지 않느냐 하실 수 있지만

게시물 조회수를 보고 판단하자면 허수가 있는 듯 하니

그냥 열 분 쯤 들르신다고 여기고 있어요.

어쨌든 뭐, 열 분이건 한 분이건 간에

아직까지 작가로서의 박성열을 잊지 않는 독자가 있단 건

뿌듯하고 또 기뿐 일이니까, 그에 대한 보답이 될 수 있도록,

머지않아 어떤 선물이건 들고 오도록 할게요.

 

2018년 12월 20일의 전 약에 취해 있습니다.

항전간제를 두 가지 먹고 있어요.

크, 엄청나게 졸리고 배도 아프고 신경도 곤두서고 그래요.

옛날에 단행본을 구입하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발작을 앓다가, 만화 그릴 무렵부터 완전히 회복했거든요?

근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재발해서, 옛날이랑 비슷한 수준까지

건강 상태가 떨어져 버렸어요.

한번 이겨낸 적 있으니 정신력으로 어떻게 해결해 보려는

단순 무식한 대응을 반복하다가, 한 주에 몇 번씩,

어느새 하루에 몇 번씩 자빠지는 제 모습에 바보 같음을 느끼고,

얼마 전에야 제대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아! 물론 병원은 전에도 다니고 있었어요.

단지 전문적으로 치료하기보단, 그냥 대강 관리만 하면 되겠다고,

진단하는 의사 선생님께서도

과를 바꿔서 전문의를 찾는 게 낫지 않냐며 걱정하시는데

저만 되게 느긋한 자세로 전문가라도 된 양,

옛날처럼 또 알아서 이겨낼 거란 자만심에 빠져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최근에야 신경과로 돌아왔는데

사진을 찍어 보니 뇌가 수술 전으로 돌아가 있더군요.

뭐, 당시에 수술할 때도, 태어날 때부터 구조가 이래서

언젠가 돌아갈 거란 설명을 듣긴 했지만, 진짜로 CT에서,

요샌 CD에 저장해 주니까 전보다 더 쉽고 정확하게 상태를

목격하고 나니까, 허탈하고 슬프고 그랬어요.

뭐, 악성 종양 같은 거랑은 다르니까 관리만 잘 한다면

문제 없이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지만

그래도 제겐 끔찍했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삶이

아직까지 기억에 있거든요?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요.

이미 최근 몇 년 동안 겪은 발작만으로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가 딱딱 부딪치는 수준이고.

차라리 죽거나 그런 건 별로 안 두려워요.

제가 주변에 항상 하고 다니는 말이,

궁금해서 꼭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세 가지 있는데,

첫째가 외계 생명체, 둘째가 강 인공 지능,

그리고 마지막이 죽음? 뭐 사후 세계? 그런 거란 말이죠.

앞의 두 개를 모른채 생이 끝난단 게 싫긴 하지만

어쨌든 궁금한 걸 확인할 기회가 되니까

죽는 게 오히려 흥미롭고 무섭지도 않은데,

발작이 문제예요, 죽는 것보다.

발작은 굉장한 공포예요. 사고 마비가 일어나니까요.

전 어떤 뜻밖의 일에도 당황하지 않아요.

머리를 가르는 수술을 앞두고도 덤덤했고요, 두 차례나요.

재해를 만나건 물리적인 돌발 상황을 맞이하건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과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이며

어차피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으니까 걱정도 없다고 봤어요.

마음가짐이란 게 중요하니까요. 자랑할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발작이 어떤 거냐면, 저처럼

뇌의 해마가 제 기능을 못하는 환자의 발작이 어떤 거냐면,

완전히 본능 뿐인 동물로 퇴화해서,

생각이건 뭐건 강제로 봉쇄를 당한 채로

날 씹어 먹을 짐승 앞에 던져져 떨게 되는,

아니,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모든 경험의 열 배, 백 배를 넘는 두려움이에요.

그걸 겪고 있고, 앞으로 또 겪게 될 거라서,

뇌전증 환자의 자살률이 왜 이렇게 높은지도

이해가 될 정도예요. 그래서,

열심히 약을 먹고 있어요,

치료가 되면 좋겠다고 온 맘으로 바라면서.

장애 등급 판정도 곧 받아 볼까 해요.

혼자서 병원까지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시를 넘어가려니 택시 요금도 괜히 아깝고,

마침 뇌전증 환자에겐 장애 등급이 주어지는데,

병원 방문을 위해 오갈 때 도움이 된다더라고요?

아직은 건장한 30대라 호들갑 같긴 하지만,

세금 내며 사는 국민으로서,

가끔씩 혜택이란 것도 좀 받으며 살면

맘이 지금보다 여유로울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어요.

별 근거는 없고요, 하하.

아, 맞다. 근데 이게, 치료를 받고 호전이 된다면

장애 등급도 못 받는대요.

근데 그럼 더 좋은 거란 말이죠? 낫는 거잖아요?

오히려 원래라면 혜택을 받아야 할 부분만큼

돈을 더 내라고 해도 기꺼이 그럴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이 지옥 같은 걸,

질병을 내 인생에서 밀어낼 수 있다면

얼마도 안 아까울 거예요.

약 꼬박꼬박 먹고 의사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서,

꼭 건강을 되찾고 싶네요.

여러분께서도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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