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과 저 사이엔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essenti2018.05.13 07:25조회 수 1058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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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작품을 한두 편씩 올리고 있어요.

조회수는 15년 전 수준입니다.

아! 접속자는 꽤 되는데, 허수일 거라고 생각해요.

게시물을 보지 않고 나가는 건 계산에서 제해야죠.

여하튼, 그렇게 하면, 하루에 몇 분이 다예요.

이럴 수 밖에 없단 생각이 드는 게,

홍보를 전혀 하지 않으니까요.

예전엔 여기저기에 링크도 하고,

작품을 퍼뜨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요샌 그냥,

많이 봐 주시는 건 제 목적이 아녜요.

이미 연재는 몇 년 전에 끝난 작품이고,

기억에 남아서, 그리워서, 추억에

들러 주시는 분들만의 에센티닷넷이니까요.

 

전 PC통신을 1991년부터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2004년에 천리안이

아예 서비스를 중단할 때까지

함께 얘기 나누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서도

계속 거기에 남아 있었어요.

영화 <접속>의 유행으로 신세대의 상징이 됐던 적도,

이용자가 너무나 많아서 접속이 어렵던 시절도 있었죠.

근데 마지막은, 세상 모든 잊혀진 장소가 그렇듯이,

원래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적막하고 허무했지요.

그래도, 그 빈터에 홀로 서 있는 일이

서글프다거나 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끝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유일한 주민만이 갖는 따뜻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찾아 주시는 분들께 그런 기분을 선사하겠다기 보단,

어쩌면 그저 제가 그 느낌으로 이 자리에 있고 싶나 봐요.

 

여러분과 저 사이엔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에센티란 작가는 떳떳하지 않아요.

중학생 팬과의 통화 중에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했고,

연락해 주시는 고마운 몇 분께 추파에 가까운 말을,

어떤 경우는 진짜로 추파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회고가 가볍게 느껴질까 봐 자주 일부러

'이상한 소리'라고 말하지만, 그냥 성희롱입니다.

사람을 무시하는 망언을 한 적도 많고,

자신감이 과해서 주제 넘는 허언도 뱉아 왔지요.

2006년부터 2007년까진 잦았고,

2008년부터 2009년까진 두세 번일 거예요.

10년 전이라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아요.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던 거겠죠?

 

에센티란 이름은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왔어요.

솔직히 말해서, 쇠락하는 걸 전부터 바라고 있었습니다.

다만, 치사하게도 제겐 먹여 살릴 입이 많고,

아픈 몸에 할 줄 아는 게 이 일 뿐이어서,

사실은 이것만큼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 하나도 없어서,

결국은 직업을 버리진 못해서 만화를 그리고 있으므로,

제 명성만큼은 보잘것없이 시들어 떨어지는 쪽을 원했습니다.

아무래도 제 양심에 덜 거슬리니까요.

물론 아직도 작가긴 합니다. 아! 작품을 만들기보단,

기술이 있으니 다른 작가들께 도움을 주는 쪽입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에센티닷넷이 꾸준히 존재하는 이유는

첫째가 위의 저것이고,

둘째는 제 작품이 기쁨이 된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계셔서,

셋째로 도망쳐선 안 된다고 9년 전에 생각해서예요.

제 책상 옆엔 표창장이 걸려 있어요.

국민학생 때 받은 거예요. 이렇게 적혀 있죠.

"밝은 심성과 건전한 생활태도가 다른 어린이의 모범"

이걸 재학하던 내내, 거의 매년 받았어요. 선행상도요.

아마 성적이 좋고, 아버지께 돈이 많아서 받은게 아닐까?

요즘엔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어요.

난 착한가 보다. 선행상도 받을 정도의 인간인가 보다.

그렇게 착각하고 살았죠. 그래서 제가 살아 가며

단 한 번도 제 언행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2009년까지 그랬어요.

 

그랬더니, 사회의 악으로 살며 떳떳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역사가 너무나 소름 돋아서,

2009년부턴, 말 한 마디, 몸가짐 하나에도,

언제나 자신을 감시할 거라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그 다짐이 흐트러져서,

혹시라도 다시 내가 밝은 심성과 건전한 생활태도를 가진

타인의 모범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꾸짖으러 들러 주시는 여러분을 늘 뵐 수 있게

에센티닷넷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마치 저 누렇게 낡은 표창장,

거짓 문구가 적힌 종이를 보며

매일 새로이 날 의심하는 것처럼요.

 

잠들기 전에 쓰는 글이라 그런지 정리가 잘 되지 않아요.

제가 뇌출혈, 뇌수종으로 수술을 두 차례 받고,

현재는 뇌전증을 또 앓고 있어서요.

정신이 좀 이상하다 보니 무작정 정신력으로 버티던 걸

요샌 잘 못 해요. 하하, 십수 년 전엔

밤을 잘 새는 게 작가로서의 자질이라고 좀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말예요. 요즘은 이랬다가

당장에 혹은 조만간에 다시 발작하는 게 두려워서,

얼른 눕고 휴식을 취하는 게 이로우니까,

글을 더 다듬지 않고 일단 등록해 봅니다.

사실은 긴 글을 예전만큼 잘 적지도 못해요.

검토하는 일이 쉽지 않네요. 자주 혼란스러워서.

이것도 뇌전증 때문이에요. 편리한 병이네요.

생각하는 걸 생각이 날 때 뱉지 않으면 위험한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이 경우엔 차라리 위험한 쪽을 택합니다.

다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 무서워서, 아픈 쪽이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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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6일 요샌 시간이 늘 부족해요.
댓글 1
  • essenti글쓴이
    2018.5.13 07:43 댓글추천 0비추천 0

    사이트를 개편할 때마다 이 얘기를 다시 했는데, 이번엔 몇 달 만에 글을 남기네요. 많이 바빴다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이 정도 글을 쓸 시간은 늘 있었고, 단지 매번 이런 글엔 힘을 많이 들이게 돼서, 지금까지 미뤄 왔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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